역사적 배경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의 1대 군주는 임진왜란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의주로 도망갔던 선조이고, 조선의 2대 군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원흉이자 강화도로 도망치지 못해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인조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반정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능양군이 왜 서인과 결탁하여 반정을 일으켰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왕이 된 남자에게 진평군이라고 불리는 자는 실제 역사에서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능양군의 아버지인 선조의 다섯 번째 아들 정원군(훗날 능양군이 왕이 되면서 정원 대원군으로 승격)의 장남입니다.
즉, 선조의 손자인 것입니다.
선조는 자신이 방계출신이기에 어린 능양군을 매우 어여삐 여겼고, 유년시절 특별히 왕궁에서 기르며 매우 총애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조의 총애를 받으며 이렇게 할 문제없이 자라난 그에게도 시련이 닥칩니다. 선조가 별세한 후 바로 자신의 큰아버지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청년이 된 능양군은 1615년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될 일생일대의 사건을 맞이합니다. 바로 신경희의 옥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은 광해군 집권 초기로, 아버지 선조에게 정통성 있는 후계자로 지목받지 못한 광해군은 역모에 대해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는 곧 광해군 재위 기간이 왕실 종친들 입장에서 보면 무척 피 말리는 시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능양군은 빈소에서 곡을 하며 이대부터 광해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이는 곧 집안의 풍비박산을 초래한 사건으로 이후 인조반정의 원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능양군은 본격적으로 대북파의 반대파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숙청하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키자(서궁 유폐) 불효와 패륜을 앞세워 이를 명목으로 광해군을 비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1623년 김류, 이귀, 이괄, 최명길을 필두로 인조반정이 일어납니다.
미리 포섭된 훈련도감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광해군과 북인은 숙청되었으며 반정의 세력은 하룻밤만에 조정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목대비의 허락을 받아 비어있는 옥좌에 능양군이 앉게 됩니다.
바로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즉위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조정은 권력은 대북파에서 서인들에게 옮겨갔으며, 친명배금을 선언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능양군의 개인적인 복수혈전은 성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능양군 본인은 조선의 지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은 훗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본인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일이 되고 맙니다. 광해군의 외교력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훌륭했지만, 정치력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왕권강화를 위한 그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폐모살제(어머니를 폐하고, 형제를 죽이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여졌습니다. 명분 또한 문제였습니다.
어버이의 나라인 명나라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시대정황 상 서인들이나, 일부 남인들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상인 태종 이방원과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도 피의 숙청으로 왕이 되었는데 왜 광해군은 왕이 될 수 없었던 걸까요?
이는 곧 왕권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이미 임진왜란으로 인해 납속책과 공명첩이 남발하여, 신분제가 동요된 마당에 왕권이라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조정신료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본래도 지지기반이 약했던 광해군이 본인들의 생각과 엇나가는 행동을 일삼았으니 다수 야당인 서인과 일부 남인 것들의 눈엣가시였음이 분명합니다.
정보
광해군이라 하면 흔히 우리는 연산군과 더불어 폭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광해군과 조선 제15대 왕으로써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다음의 왕으로 서적 편찬과 사고 정리 등 내치에 힘을 쓰고 명과 후금 두 나라에 대하여 양단의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하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당쟁에 휩쓸려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였고 마지막은 인조반정으로 인하여 폐위되었습니다. 재위 기간은 1609~1623년으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는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광해군의 15일간 행적이 빠져 있는 것에서부터 착안한 내용으로 이 없어진 15일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인물이며
주변 환경 등의 정황이나 묘사는 대부분 모두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에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은 물론이며 붕당정치로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 광해군 8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광해 왕이 된 남자 실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느낌이 들게 한 영화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의 모습과 도승지 허균의 관계등이 상당히 자세하게 그려지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반의 스토리가 모두 허구일 뿐으로 광해 왕이 된 남자 실화라는 말은 오해일 뿐입니다.
간략한 줄거리로 보자면 밖으로 돌며 상궁과 만나던 광해는 양귀비에 취해 쓰러지게 되어 이를 숨기기 위한 도승지 허균은 광해를 기밀리에 숨겨 치료받게 하고 광해와 비슷한 만담꾼 천민을 왕노릇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왕이 되어버린 남자 허균의 지시에 말투부터 걸음걸이 등 국정을 운영하는 범까지 함부로 입을 놀려서도 들켜서도 안 되는 위험한 왕노릇이 시작됩니다.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진 왕의 모습에 궁정 안이 술렁이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대역이란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천민인 광해 대역은 정말 백성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무엇이 백성을 위한 나라인지
정말 백성들이 원하는 왕으로 변해가면서 그를 의심하고 자해하려던 이조 판서가 광해를 치려하지만 이미 대역은 사라지고 진짜 광해가 살아 돌아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판서는 호대게 당하고 대역을 한 만담꾼 천민은 호위무사의 도움으로 궁을 빠져나가 도망가게 되는데 뒤쫓아오는 무사들 마저 자신을 지켜준 호위무사의 희생으로 도망가 배를 탈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도승지 허균이 부두로 나와 배를 타고 떠나는 만담꾼 천민을 진정한 왕에 모습다웠다는 존경의 모습으로 그를 배웅하며 묵례하고 끝나게 됩니다.
등장인물
광해군/하선(이병헌)
광해는 암살과 역란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져 가고 급기야 이 위험을 대신할 자신의 대역에 은밀하게 발탁되고 며칠 후, 광해의 건강이 악화되자 왕이 대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허균(류승룡)
광해군의 최측근이자 충신인 허균은 이성적인 사람으로 일 처리와 빠른 상황 판단, 대처능력 등으로 매우 유능한 신하입니다. 허균은 많은 눈과 귀를 피하기 위해 '왕'의 대역인 하선을 교육하고 그에게 궁중 생활과 일상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중전(한효주)
중전은 오라버니인 유정호가 역모로 몰려 고문을 받고 있는 상황을 박면하겠다는 것을 하선에게 약조받습니다. 폭군으로 변한 광해군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듯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대역을 하는 하선을 보며 웃음을 찾기 시작합니다.
조 내관(장광)
조 내관은 하선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하선이 궁금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옆에서 알려 주는 인물입니다.
도 부장(김인권)
도 부장은 '왕'의 대역인 하선을 직접 데려온 호위관으로 왕을 풍자하는 하선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 왕에게 얼마나 충성하는짓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도 부장은 고지식하고 이를 데 없는 유인으로 처음으로 '왕'을 대역하고 있는 것 같다고 눈치채는 인물입니다.
사월이(심은경)
나라에서 과한 세금을 거둬가며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게 되고 궁으로 들어오게 된 15살 기미나인입니다. 하선은 사월이의 사연을 듣고 헤어지게 된 어머니를 꼭 만나게 해 주겠다며 약조를 하고 그 후에도 잘 대해줍니다.